나무들 흔들리다

 

 

비 뿌리는 바람 앞에

파랗게 자지러져 환호하는

여름 나무처럼

누구나 젊은 날 한때

열병처럼 환희를 앓는다

그러나 바람은

갑자기 오듯 갑자기 사라진다

바람 지나간 자리

물 빠져나간 갯벌처럼 生에 주름 생기고

부러진 가지 끝에 슬픔의 수액 맺힌다

저린 발등 위로

너무 일찍 저버린 시간의 잎새들 쌓일 때

바람 앞에서 실존은 불안으로 벌럭인다

바람은 하늘에서 나무로

나무에서 나무로 쉽 없이 불어 오가며

그렇게 그늘을 넓히고 깊게 한다

나무는 생명의 낡은 장기를

더 땜질할 수 없을 때까지

바람으로 신명나고 바람으로 고달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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