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항아리

 

 

지난날 숱ㅎ란 상처와

아직 남아 있는 자투리 하늘과

변두리를 밝히는 흐릿한 별들

그만한데 섞어서 핏빛으로 아롱지는

질항아리를 만들고 싶다

배는 불러 있어도 잉태할 수 없고

입을 열렸으나

울음 울 수 없는

퇴화한 한 마리 서러운 학 같은

항아리였으면 좋겠다

그 항아리에 가슴 저 아래서 백 년을 고여 오는

밝디맑은 샘물의 끝 간데없는

깊은 향기를 담을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죽은 날

하루 새벽만 조용히 누운 채

천지간에 그윽한 적막 속에서

이 이쁘디 이쁜 질항아리를

마음껏 바라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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