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치는 저녁길

 

 

눈보라가 친다

아무도 그 살갗에 옷을 입히지 않는 차운 저녁

누가 저리도 허허롭게 맨몸의 춤을 공중에 띄우는가

그 몸을 열면 몇 번이나 글썽임으로 자리를 바꾼

목숨의 줄이 하얗게 엉켜 울고 있다

어떤 죽음으로도 다가서지 못할 쓸쓸함으로

눈발은 無宿者처럼 헤매 돈다

허공엔 온통 눈보라 지난 자리마다

사납게 바람 일고

그 설움인 것과 또 다른 하늘을 꿈꾸며

어지러운 가지 끝에 첫발을 디뎌 온몸을 투신한다

눈발은 거무스레한 거리를 삽시간에 하얗게 덮는다

사람들은 새우등을 한 채 길을 걷고

바람이 몇 개 남은 가로수 잎을 낚아채며

내 이마를 차갑게 때린다

길 저편 가로등은 눈을 뒤집어쓰고 외롭게 서 있다

문뜩 선술집 정담이 그립지만

막상 갈 집도 친구도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풀풀 흩날리는 눈송이와 함께

총총히 집을 향해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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