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나무

 

 

주름 깊은 등걸은 늙고 상처투성이다

무슨 생각 하 그리 많은지

곧게 뻗은 가지 하나 없다

멈칫거리며 바람에 휘둘려 온몸 부르텄으나

열매만은 단단히 떫고 뻑뻑하다

설익은 뜻을 함부로 전하려 않고

털북성이꽃 쭉정이 밤송이는 독하게 떨어낸다

지나는 바람에 허튼 말 내지 않으며

아니다 싶은 가지는 툭 분질러 버린다

영혼 가벼운 새들마저 둥지를 못틀게

앉아 깃을 쪼며

미련을 떨치게 가르친다

보라 가을머리에 가시껍질 벙긋이 열고

웃는 붉은 밤톨들

늙은 몸뚱아리로 그리 이쁜 열매를 매달고 서 있는가

열매 맺으면 그 뿐

눈바람 치면 다시 알몸으로

긴 침묵에 드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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