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물과 공기의 경계에서

점박이 나비가 춤춘다

벌개미취꽃에 앉은 나비같이

사내는 흐릭한 물속을 응시한다

오래 들여다보면

오른손에는 삶을 왼손에는 죽음을 움켜쥐고

쩔뚝이며 온 숨막힌 세월이 흘러간다

사람도 사랑도 그렇게 갔다

어린 날의 호드기 소리도

바람과 함께 실려 가고

물살 뿌리치던 시간도

손끝에서 떠 내려 간다

이제 사내는 눈도 입도 막고

귀마저 닫으며

두 팔 날갯짓을 멈추려 한다

꽃술을 빠느라 정신이 팔린 나비를

두 손가락으로 붙잡아 들어 올리듯

누군가 사내를 물 밖으로 꺼내리라

나비는 더듬이에 영혼을 싣고

꽃잎을 떠나 막막한 공중으로 날아간다

'바람 길 - 송인준 시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빙판 골목길에서  (0) 2017.07.22
저무는 빛  (0) 2017.07.21
밤길  (0) 2017.07.19
외딴 집  (0) 2017.07.18
노숙자의 꿈  (0) 2017.07.1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