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길 - 송인준 시집
장례식장을 나오며
TiGeR.K
2017. 6. 28. 10:03
장례식장을 나오며
그의 주검을 뒤로하고
아직 팔팔한 슬픔에 젖었다
내 나이 일흔을 넘길 때
죽음은 덤덤하게 시계에 들어왔다
모든 것이 정지되는 날
내 중량보다 더 무거운 등짐 부려놓고 나면
거품 들끓는 세상 물끄러미 관조 할 수 있을 것인가
헛된 탐욕으로 크게 뒤척이던 오장육부도
긴장 풀어놓고 제멋대로 따로 놀다가
벌레들의 한 끼 밥이 되고
혈관 속의 검붉은 피 모조리 빠져나간 몸도
추수 끝난 볏단처럼 순하게 말라 갈 수 있겠는가
애증과 집착으로 불타던 눈꺼풀은 싸늘히 식은 뒤
산비탈 감자꽃 만나고 온 깡마른 바람이나 품고 있을 것인가
내 나이 이제 일흔 넘어
앞서간 이들 적지 않고 앞서갈 사람들도 있을 것인데
아직도 늙지 않은 슬픔은
가까스로 뿌리내린 生을 자주 흔들고 있을 것인가
가까운 날 내 일상에 기식했던 선악 흑백과 美醜는
단지 갱지 한 장으로 남아 누렇게 바랜 뒤
문득 흔적 없이 스러질 것이거늘
오늘 나는 이별 하나로 일상의 비늘 뒤집어 대며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을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