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길 - 송인준 시집
대청봉 산행길에서
TiGeR.K
2017. 9. 19. 11:33
대청봉 산행길에서
대청봉 오르는 길 천불동 계곡 물에
모자를 벗어주고 등산화도 던져준다
갑자기 청명한 산 기운이 나를 휩싼다
젊은 나날 헤프게 퍼주고도 남은 정
흩뿌리는 빗줄기에 방생하듯 놓아주고
등짝에 가득 맨 육포며 건빵도
주머니에 남은 노잣돈도 길가 주막마다 나눠준다
지금껏 혼자 온 내 곁에 따뜻한 마음들이
도란도란 따라오는 것 같다
이윽고 대청봉에 올라
내 안에 잠재운 바람기 모조리 깨워
바람에게 돌려주고 고사목 지대 내려가며
뱃속의 깡통들도 흔들어
가지에 걸어놓는다
나는 신선 샅은 걸음걸이로 여유 있게 내려간다
마지막 오색약수 물에
때 절은 나를 통째로 풀어주고
알몸 빈털터리로 돌아간다
시장기 벗 삼아 돌아간다 가볍다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