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길 - 송인준 시집
적막한 날
TiGeR.K
2017. 8. 11. 08:47
적막한 날
창문 열어젖혀도 부드러운 기운은 없다
도로 건너 분식센터 미술학원 세탁소 미용실 간판이
비스듬히 자빠져 있다
비가 오지 않아도 어둑한 길따라
모래바람 뒤집어쓴 플라타너스들이
시종처럼 웅크리고 섰다
저렇게 무작정 이파리를 피워 올린 나무둥치같이
우리는 쓸쓸하고
낯선 인도로 낯선 사람들이 유령처럼 걸어간다
저마다 한 짐 가득 생활을 등에 걸며 매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거 있지 않은가
우리의 사랑이 꽃피려 할 때 우리 복숨은 시들고
수없이 열매들을 따낸 과일나무마냥
사람의 삶은 누추하다
풀죽은 가로수 위로
헛기침하며 바람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