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길 - 송인준 시집
전신주에게
TiGeR.K
2017. 8. 8. 09:14
전신주에게
너는 나무보다 더 쓸쓸하가
그냥 뿌리로는 수맥을 짚어 자라지도 못하고
이 삭막한 글판에서 나무보다 거친 기억을 갖고 있을 뿐
초겨울은 얼마나 많은 구멍을 마련하고 있는가
나무의 희망이 뿌리로 자라
서로의 발자국을 더듬어 약속을 주고받을 때
너는 기다림의 그 깊은 통로를
오래도록 서성여 왔을 뿐
네가 베어내는 녹슨 추억들은
땅 위서 부슬부슬 흩어지고 만다
단지 어쩌지 못할 간격으로 세상은 결박되어 있음을
마주 선 세월로 알려 왔을 뿐이다
너는 나무보다 외롭고 더 가볍다
맨살의 고단함을 직립으로 버티는 밤에도
너는 잠들지 못한다
고작 바람이 끌고 가는 마른 꿈을 날려 보냈을 뿐
너는 나무보다 쉽게 쓰러진다